2021. 1. 14. 11:00ㆍ열차의 역사
"대전발 0시 50분" 이 있었을까요?
여러분들은 모르시겠지만 있었습니다. 대전 블루스라고 있습니다. 저는 조용필선생님의 노래로 기억했는데 아니더라구요
1959년 안정애 선생님께서 발표한 곡입니다. 자료조사하면서 김추자씨의 앨범에서도 보이더라구요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에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열차 대전발 0시 50분~"
애절한 멜로디로 시작된다. 반세기가 넘은 오래된 노래이지만 곡 이름만 얘기하면 아마도 제 나이때 분들은 금방 멜로디를 흥얼거릴겁니다.
예전에 제가 올린 내용을 보시면 대전역의 역사의 시작을 아실 수 있으실겁니다.
일본인들의 거주지가 형성된 곳으로 대전역은 본정통으로 불렸던 번화가 였습니다.
요즘 사진애호가들이 많이 찾는 곳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바로 소제동인데요 이곳 소제동은 전근대 철도 역사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곳입니다. 전국에 순천과 대전 두곳 뿐입니다.
일제 잔재라고도 하지만 전 보존하는 쪽에 손을 들고 싶습니다.
대전역 인근 동구 소제동은 '철도관사촌'이 당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으니 한번 방문해 보심이 어떠신지요
대전역이 개발 바람이 불면서 언젠가는 밀릴것를 생각하니 맘이 아픔니다.
다시 노래로 돌아와서 대전블루스에 얼킨 대전역의 0시 50분발 열차는 목포행이였습니다.
전날 서울에서 저녁 8시 45분에 출발해서 다음날 0시 40분에 도착해서 10분 후 출발하는 열차였다고 합니다.
1959년 2월 제33열차로 탄생한 이 기차는 1년만인 1960년 2월 대전발 03시 05분 발차로 시간이 변경되면서 짧은 수명을 다했습니다.
대전역에서 목포행 호남선으로 환승하려면 10분이라는 시간이 있었기에 승객들은 이틈에 가락국수를 먹었다고 합니다.
이 가락국수가 대전역의 명물이 된 출발점이 된것이지요
맛있겠죠 와우 뜨끈한 국물에 먹는 단무지와 국수는 지금도 먹고 싶습니다.
1년정도의 수명이지만 노래로 인해서 지금까지도 완행열차에 대한 추억을 선물하고 있습니다.
목포행 완행 열차는 있었습니다. 전 노래로만 존재하는 줄 알았습니다.
이 코로나가 없을때는 겨울이면 생각나서 가끔 먹으러 갔었거든요. 여러분 대전에 방문하시면 대전 역사에 있는 가락국수를 한번 드셔보세요 맛보다는 추억입니다. 아마도 다음해 겨울에 생각날꺼라고 장담합니다.
전쟁 후에 대전역의 모습은 예전 모습을 찾아 볼 수 없는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는데요
전쟁 후 재건에 급급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색있는 모습은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에 좀 아쉽지만 시대가 시대이니 만큼 군사정권의 모습을 건축 양식에서도 보이는 듯합니다.
전쟁이 끝나고 얼마 안되서인지 군용 짚차만 서 있고 한복을 입으신 분들이 보이네요
걸인 결의대회라는 요즘은 생소한 행사인데요 . "불우한 사람들아 뭉쳐서 재건하자" "근면하자" "충실하자" 라는 피켓을 들고 있고 거지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데요. 요즘보다 사람들에게 때가 뭍지 않았던건 아닌가 라는 생각과 전쟁 후 라서 기댈 곳이 없는 사람들이 아닐까라는 걱정에 마음이 아프기도 했습니다.
요즘도 노숙자들이 많이 있는데요 이런 느낌은 없었습니다.
전쟁이라는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전역에 모습은 계속해서 보여드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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